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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식 물류 자동화의 세 가지 방향

엄지용2022/12/01 17:12

흔히 물류업계 실무자들 사이에서 쿠팡의 물류센터는 ‘노동 집약적’이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최근에야 쿠팡도 첨단 로봇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거나 준비하는 물류센터가 늘어나고 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물류 작업의 상당 부분을 인력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맞거든요. 물류업계에서 ‘자동화’ 하면 떠오르는 물류센터는 신세계나 롯데의 그것이었지 쿠팡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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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쿠팡 물류센터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멋들어진 자동화 설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눈에 보이는 이 로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쿠팡

 

커넥터스(운영사: 비욘드엑스)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미래물류기술포럼이 최근 출간한 <물류 트렌드 2023>의 공동저자 박지원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 디자인 담당 시니어 디렉터는 쿠팡에서 신규 물류센터를 오픈하고 그에 맞는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여 시스템을 연결하는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 50개에 달하는 쿠팡의 FC(Fulfillment Center)와 그 이상의 숫자가 가동되고 있는 캠프(배송거점)까지. 상당수가 2016년부터 쿠팡에 합류한 그와, 그와 함께하는 50여명의 조직원들의 손길을 거쳤습니다. 쿠팡의 물류센터 자동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라고 볼 수 있죠.

 

그가 26일 커넥터스와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이 공동 주관한 세미나 <CONNECTED 2023>의 연사로 서서 ‘물류 자동화’에 대한 철학을 공유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자동화에 대한 생각은 세 가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눈에 보이는 멋들어진 첨단 자동화 설비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입니다. 둘째, ‘충분한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무거운 자동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어떤 형태의 자동화를 선택했든 시시각각 바뀔 수 있는 이커머스 수요에 대비하여 ‘유연성’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하드웨어보다 중요한 소프트웨어

 

‘스마트물류’라는 표현이 일반화(?)된 요즘 물류업계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류센터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가 돌고 있다고요. 실제 이 데이터의 흐름을 관리함으로 큰 효율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는 물류 서비스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멀리서 예시를 찾을 필요 없이 네이버만 하더라도 물류 플랫폼 NFA(Naver Fulfillment Alliance)에 ‘데이터 플랫폼’이라는 별칭을 붙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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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물류센터에는 데이터가 넘쳐흐를까요? 이에 대한 논쟁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물류 데이터’라는 것이 정말로 측정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저 또한 물류현장을 많이 돌아보지만 생각보다 ‘데이터’를 측정할 준비가 돼있는 물류기업들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종이 피킹리스트를 출력하여 창고에서 물건을 집품하러 떠난 작업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2시간 뒤에 돌아왔다고 해보죠. 물류기업은 이 작업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서 업무시간이 지연됐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눈을 부라리는 작업반장들이라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데이터’라고 부르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장 반장들의 주관이 개입될 것이고, 반장도 사람이기에 물류센터에 근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업무를 모두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과거 쿠팡 물류센터에 알바로 들어가 곳곳을 탐방(?)하다 걸려서 ‘왜 일 안하고 서성이느냐’며 혼난 경험이 있는데요. 이게 발각되기까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박 디렉터가 강조하는 첫 번째 물류 자동화 키워드가 ‘소프트웨어’인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자동화보다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 측면의 자동화”라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물류센터에 흐르는 어떤 데이터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소프트웨어 자동화에 어마무시한 인공지능 기반의 첨단 기술이 투하되는 것이냐면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앞서 사례로 이야기했던 작업자가 들고 다니던 ‘종이 피킹리스트’가 ‘PDA’와 같은 전자기기로 바뀌고, PDA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PC에 설치된 소프트웨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게 시작입니다. 요컨대 작업자의 업무 프로세스 요소요소를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도록 기반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자동화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여기 박 디렉터가 전하는 한 가지 노하우가 있다면 현장 작업자의 눈높이에 맞춘 ‘시스템’ UX(User Experience)를 설계하는 것인데요. 예컨대 과거 쿠팡이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을 고도화하던 당시, 물류센터에서 주로 일하는 50대 여사님들은 PDA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매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박 디렉터는 함께 일하는 개발자들에게 “애니팡보다 쉬운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하고요. 그 이유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주체인 현장 작업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정확한 데이터’가 쌓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물류 시스템은 지금도 여전히 소프트웨어 자동화의 기본이자 핵심이라는 게 박 디렉터의 강조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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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자동화 이전에 수요 창출

 

소프트웨어 자동화가 선행됐다면 이제 물류센터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요소요소의 문제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최적화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건데요.

 

예를 들어 피킹 작업자가 100개 정도의 물건을 집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이라 해보죠. 그런데 시스템을 분석해보니 실제 선반에서 작업자가 물건을 꺼내는 시간은 1시간 중에서 5~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겁니다. 나머지 40분은 그냥 ‘걷는 데’ 소요되고 있었죠. 이 데이터를 확인했다면, 자연히 작업자의 걷는 시간을 줄인다면 물류센터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가정까지 나아갈 수 있겠죠? AGV(Automotive Guided Vehicle)와 같은 GTP(Goods to Person)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등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비싼 하드웨어 설비를 도입하면 좋을까요? 반자동화부터 완전 자동화까지 하드웨어 설비는 종류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곧바로 자동화를 만능열쇠처럼 도입하는 행동은 경계하는 것이 좋다는 게 박 디렉터의 조언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우리가 자동화 설비를 사용할 만큼 ‘충분한 수요’를 창출하고 있느냐입니다.

 

하드웨어 자동화에는 많게는 수백~수천억원 단위의 고정비가 투하되기 마련입니다. 고정형 자동화 설비라면 그 특성상 물류센터의 한계 처리량(Capacity) 또한 어느 정도 규정되는 특성이 있죠. 만약 자동화 설비가 처리할 만큼의 ‘수요’가 전방 이커머스 채널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다면, 이 고정비는 그대로 효율이 아닌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써 도입한 자동화 설비가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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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봤을 때 수천억원의 투자금액이 투하된 멋들어진 셔틀 자동화 시스템이 물류센터에 들어섰다고 해보죠. 이 시스템으로 하루에도 4만건 이상의 물류를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해보죠. 그런데 정작 고객 주문이 1만건이 안 들어 온다면요? 자동화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기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셋째무엇보다 유연성

 

박 디렉터는 이런 상황에서 ‘유연성’을 갖춘 자동화 설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통상의 고정형 자동화 설비는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계 처리량’이 어느 정도 정해지기 때문인데요. 이는 수요가 부족했을 때도 문제지만, 수요가 폭증했을 때도 문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늘어난 수요를 받아내기 위해서 애써 구축한 자동화 설비에 ‘사람 작업자’가 투입되는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하죠.

 

박 디렉터에 따르면 다행히도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자동화 설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필요한 만큼 빌려서 사용할 수 있는 RaaS(Robotics as a Service) 기반 로봇 자동화 설비가 대표적인데요. 일단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해둔 상태에서 언제든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러한 유연한 설비 도입을 동시에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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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 확보된 회사라는 전제하에 자동화는 적정 캐파(Capacity)를 맞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회사에서 자동화를 한다면 좀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멋들어진 첨단기술을 도입해서 물건을 피킹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꾸준히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자동화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입니다”

- 박지원 쿠팡 시니어 디렉터

 

박 디렉터에 따르면 쿠팡 역시 앞서 이야기한 방향대로 ‘자동화’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들어 쿠팡에 들어선 ‘자동화 설비’가 꽤나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쿠팡이 강조하는 것처럼 이제 쿠팡 물류센터에서도 ‘로봇’은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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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이전에 쿠팡은 ‘소프트웨어’ 자동화에 중점을 두고 시스템에 굉장히 많은 투자를 진행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결과 고객에게 배송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쿠팡 내부 시스템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고요. 시스템을 흐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운영 프로세스를 고도화하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이게 쿠팡이 최근 실적발표에서 줄곧 강조하고 있는 ‘엔드투엔드 공급망 가시성’이 만드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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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쿠팡이 국내 1위 이커머스 플랫폼을 자신할 만큼 엄청난 수요를 만들어지고 있는 현시점. 쿠팡은 내년도 대구에 10만평 규모의 첨단 자동화 물류센터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했죠. 과거부터 지금까지 물류업계에서 첨단 자동화 물류센터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곳은 ‘신세계’와 ‘롯데’였다고요. 어쩌면 대구 물류센터가 공개된 이후 업계의 그 평가는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충분한 수요를 쌓고, 이제 하드웨어 기반의 자동화까지 나아가는 쿠팡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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